상도동에 머무르면서 아침이면 산책삼아 현충원을 한 바퀴씩 돌고 오곤 했다. 사실 현충원은 오래 전에 한 번 다녀가긴 했다. 대학 다닐 때인가, 친구와 함께 여기에 묻힌 그 친구 형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해외에 살다 보니 모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는 좀 다르지 않나 싶다. 외국에 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니 자유니 하는 형이상학적 개념보다는 그저 국가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은 분들이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넓은 부지에 끝없이 늘어선 비석을 보면서 짧은 생을 살다간 분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었단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현충원에 묻힌 세 분의 역대 대통령 묘소도 둘러보았고, 장군묘역에 묻히기를 거부하고 월남에서 산화한 부하들 곁에 묻힌 채명신 장군의 묘도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